통곡의 벽은 예루살렘의 오래된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벽 구조의 유적으로, 이곳은 유대교, 이슬람교, 천주교,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종교적 의미를 지닙니다. 유대인들은 이곳을 유대교의 중요한 예배와 기도의 장소로 여기며, 다른 종교인들에게는 순례의 성지가 되는 장소입니다. 1981년 UNESCO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통곡의 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통곡의 벽, 이스라엘의 역사
통곡의 벽은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중심에 서 있는 유적으로 서벽이라고도 불립니다. 그 역사는 전기기원 19년, 헤로데대왕이 제2 제단을 확장할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벽은 화려한 제단의 일부로서 템플 마운트의 지탱벽으로 이어지는 고대 건축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통곡의 벽은 건축적 멋만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유산과 신앙에 깊게 연결된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도시는 수천 년 동안 다양한 문명들의 정복과 영향을 받았습니다. 70년에 로마인의 잔인한 정복으로 인해 제2 제단이 파괴되면서 서벽은 과거의 유물로 남게 되었습니다. 몇 세기 동안 이 벽은 유대인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성장시키는 시련과 승리를 목도하였습니다. 그 후 20세기 중반,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에 독립을 선언하였습니다. 이 선언에 대한 반발로 주변 아랍 국가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아랍-이스라엘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 전쟁은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공식적으로 선언함으로써 투쟁의 절정을 이루었으며, 이것은 유대인과 아랍 사회 간 30년에 걸친 긴장의 정점이었습니다. 이 긴장은 영국의 팔레스타인 지배 기간 동안 유대인과 아랍 사회 간의 불협화음으로 남아있었으며, 이 기간에는 영국의 통치하에 있는 팔레스타인으로 통칭되었습니다. 전쟁의 전장은 전쟁 초기에 영국 지배권 하에 있던 Mandatory Palestine이라고 불리던 영토에 펼쳐졌습니다. 이 충돌은 이스라엘에서는 독립 전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비상시기 동안 약 70만 명의 팔레스타인 아랍이 이동하면서 지역의 인구 구조와 지정학적 풍경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2. 통곡의 벽, 예루살렘 성지
통곡의 벽은 예루살렘의 중심에 위치했던 성전의 일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하코텔, 또는 코텔로도 불리며 이슬람은 버락 벽이라고 부릅니다. "서벽"이라는 용어는 헤로드가 성전 산당의 서쪽 비탈에 세운 약 57미터의 긴 보존벽을 지칭하는 것으로 흔히 사용됩니다. 이 의미로 사용될 때에만 "통곡의 벽"이라는 용어와 동의어로 사용됩니다. 이 구역은 큰 광장에 벽을 마주하고 기도를 드리기 위해 따로 마련된 공간입니다. 전체 서벽은 헤로드 대왕이 약 기원전 19년에 세운 거대한 하층 구조물을 지탱하고 에워싸기 위한 보존벽으로 길이는 488 미터에 달합니다. 통곡의 벽은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래층은 헤로데 대왕 시대의 거대한 멜레케 석회암 블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석재의 크기는 다양하지만 모두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이러한 구조물은 예로부터 예루살렘의 건축 역량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통곡의 벽 플라자"에서 이 벽의 기초로부터의 총높이는 약 32미터, 지상에 노출된 부분의 높이는 약 19미터입니다. 이 벽은 45개의 석재 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 28개는 지상에 위치하고 17개는 지하에 있습니다. 이 중 지상 7개의 층은 헤로드 시대의 것입니다. 이 벽 구역은 거대한 멜레케 석회암 블록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블록의 무게는 2에서 8 톤이며, 윌슨의 아치에서 약간 북쪽에 위치한 특이한 돌 한 개는 250에서 300 톤의 무게입니다. 이러한 모든 큰 돌들은 정교하게 조각된 테두리로 둘러싸여 있으며, 여백 자체의 너비는 5에서 20 센티미터입니다. "플라자"는 1967년에 만들어졌으며 예배와 각종 행사를 개최하는 장소로 사용됩니다. 여기에서는 바 미츠바 축하식 및 이스라엘 국방군의 신병 취임식을 비롯하여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며, 유대인들은 유대인 공휴일 및 통곡의 벽을 소유한 1967년의 예루살렘 통일 및 성전 파괴를 기리는 날 등에도 이곳에 모입니다. "윌슨의 아치" 지역은 2005년에 복원 작업이 시작된 곳으로, 통곡의 벽 앞의 열린 플라자에서 바라볼 수 있으며, 남성용 구역의 복원에는 100개 이상의 토라 스크롤을 수용할 수 있는 토라 액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새로운 책장, 도서관, 난방 및 에어컨 설비가 설치되었습니다. 또한 여성들을 위한 구분된 예배 공간도 마련되어 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3. 다양한 종교의 성지
이스라엘의 통곡의 벽은 유대인 신앙의 중심지로서의 역할과 함께, 역사적, 종교적, 문화적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통곡의 벽은 유대교의 역사와 신앙, 정체성의 중심지로 여겨집니다. 이곳은 예로부터 유대인들에게 매우 신성한 곳으로 여겨져 왔으며, 고대 유대교 성전의 일부이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흔적으로 간주됩니다. 유대인들은 유대교의 중요한 기념일이나 종교의식을 이곳에서 올리며, 자신들의 역사와 신앙에 대한 유대감을 느낍니다. 그뿐 아니라 이곳은 중동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간주됩니다. 관광객들은 유대인들이 이곳에 깊게 뿌리를 둔 신앙과 역사적인 연결에 관심을 가지며, 그 특이성과 아름다움을 탐험하기 위해 방문합니다. 이곳은 인간의 종교적 탐구와 연결에 대한 공간으로, 다양한 종교 및 신앙을 존중하는 문화적 융합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양한 종교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서 명상하고 기도하며, 자신만의 신앙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교에서는 알-Buraq 벽으로 알려지며, 이슬람 전통에 따르면 선지자 무함마드가 날아가는 흰 새(알-Buraq)에 타고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장소로 여겨집니다. 알-Buraq 벽은 이슬람교에서 중요한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며, 예루살렘은 이슬람교도들에게도 성스러운 도시로 여겨집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통곡의 벽에서 기도를 올렸다고 전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 통곡의 벽은 그의 십자가길과 연결되며, 기독교 성도들에게는 중요한 신앙적 장소입니다. 통곡의 벽은 예루살렘의 구시가지에 있으며, 대체로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려 있습니다. 다만 유대교의 안식일에는 닫힐 수 있으므로 최신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벽과 광장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변 지역의 박물관 입장이나 기념품 구매에는 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방문 시 주의 사항으로는 예루살렘의 중요한 종교적 특성으로 인해 적절한 옷차림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특히 사진 촬영 시에는 다른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금지 사항으로는 신성한 장소이므로 음식물과 음료 섭취가 금지되며, 비속어, 불쾌한 행동, 소란 행위는 자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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